
고려 제6대 왕 성종(981년 ~ 997년 재위, 묘호는 성종, 시호는 문의대왕, 휘는 치, 자는 온고)은 유교 정치 이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군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고려의 개혁가 최승로(927년 ~ 989년)가 올린 ‘시무 28조’는 성종의 통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고려 정치 체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번 주제는 성종이 유교 정치를 어떻게 실현했는지 그리고, 시무 28조의 내용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며 고려 정치사에 준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1. 고려의 새로운 정치 기조, 유교를 중심으로
성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이며, 부친은 대종(왕욱)이며 모친은 선의왕후 유 씨이고 이 둘 사이에서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왕으로 즉위하면서 고려 제4대 왕인 광종 시대의 급진적인 개혁 이후 혼란을 정비하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광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과 개혁을 단행했다면, 성종은 그 기반 위에 체계적인 통치 이념을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성종의 통치 철학의 중심에는 유교가 중심으로 있었으며, 유교는 단순한 도덕 윤리가 아니라 통치 이념과 행정 제도의 기틀을 제공하는 실천 정치 철학이었습니다. 성종은 즉위 초부터 유교적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이에 걸맞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문신 최승로의 정치적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최승로는 신라와 고려 초기의 정치 경험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성종에게 ‘시무 28조’라는 장문의 상소문을 올립니다. 이 문서에는 유교적 도덕을 기반으로 한 왕도 정치의 구현, 문신 중심의 행정 운영, 불교 중심 사회에서 유교 중심 사회로의 전환 등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정책 제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여전히 불교적 색채가 강했고, 광종의 개혁 여파로 인해 왕실과 호족 사이의 갈등이 잠재적으로 남아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교 정치는 도덕적 명분과 실용적 제도 개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장점을 지녔습니다. 성종이 이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즉, 성종의 유교 정치는 단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고려의 관료 체제와 교육, 법률, 제사 등 여러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시무 28조, 고려 정치의 체계를 세우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상소한 시무 28조는 고려 정치사에서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문건으로 평가됩니다. 이 상소문의 내용은 단지 비판이나 건의에 그치지 않고, 고려라는 국가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국왕의 덕치 실현과 유교적 윤리 정치 강조, 둘째, 문신 중심 행정과 관료제의 정비, 셋째, 불교의 폐단 지적과 사찰 축소, 넷째, 지방 제도 및 교육 체계 강화입니다. 특히 최승로는 신라 말기와 광종 시대의 폐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국왕이 지나친 독재 정치를 펼칠 경우 나라의 기틀이 흔들릴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국왕이 도덕적 모범을 보이고, 신하의 충언을 받아들여야 국가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종의 정치 노선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성종은 시무 28조의 많은 내용을 받아들여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지방에 향교를 설치하여 유학 교육을 확대하고, 국자감을 정비해 인재 양성을 체계화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또한, 과거제를 정착시켜 인재 등용의 공정성과 문치주의적 통치를 확립하였습니다. 사찰 축소 정책도 시무 28조에 따른 것으로 성종은 불교 사원 경제력을 억제하고 불교 중심에서 유교 중심으로의 권력 이동을 꾀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 초기의 불교 위주 통치 체제를 유교 중심 정치 체제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종은 문신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지방관 파견을 정례화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였습니다. 이는 지방 호족의 세력을 견제하고,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결국, 시무 28조는 성종의 유교 정치가 단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실질적 국가 운영 전략으로서 실천하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문서입니다.
3. 성종의 통치 유산과 유교 정치의 뿌리
성종의 유교 정치는 단지 하나의 시대적 실험이 아니라 이후 고려 정치 구조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체계적 이념이었습니다. 그는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도덕과 제도를 조화시키는 정치를 지향하였으며, 중앙집권 체제의 기반을 정비하고 유교적 가치관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습니다. 성종 이후 고려는 문신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교육·과거제·지방통제 등 여러 분야에서 유교적 체계가 강화되었습니다. 시무 28조는 단순한 상소문이 아닌, 고려 통치 철학을 집대성한 문서로서 오늘날까지도 정치 철학의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종의 치세는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점진적이었지만, 실상은 고려라는 국가의 체질을 유교 국가로 바꾼 결정적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성종의 유교 정치와 시무 28조에서 정치 지도자의 철학이 한 나라의 체제를 얼마나 깊이 있게 바꿀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최승로의 시무 28조 전문 : 출처 한국데이터베이스 고려시대 사료 사이트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93r_001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