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와 거란 사이에서 벌어진 제1차 전쟁은 역사상 보기 힘든 외교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중심에는 고려의 외교관 서희 외교적 성공이 있었습니다. 서희는 전쟁을 피하면서도 영토를 확장하는 외교적 전략을 수립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였고, 이는 ‘강동 6주 반환’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서희 외교 담판의 전개와 그 역사적 배경, 그리고 현대 외교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전쟁의 문턱에서 외교로 문을 열다
서기 993년, 거란의 대군이 고려의 북방을 침공하면서 제1차 고려 거란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거란은 송나라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고려를 외교적·군사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목적 아래 고려 공격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때 고려 조정은 전면전을 피하고자 고심하였으며 이때, 외교 사절로 나선 인물이 바로 서희였습니다. 서희는 고려 조정의 전권을 위임받아 거란의 진영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항복 요구를 넘어선 거란의 논리를 간파하며, 고려가 자주적인 국가이며 결코 송나라의 속국이 아님을 조리 있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아가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거란이 고구려 옛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면, 오히려 고려가 고구려 옛 영토의 주인이라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담판은 단순한 설득이 아닌 전략적이고 논리적인 외교 기술의 집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희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평안도 지역에 해당하는 강동 6주를 고려 영토로 귀속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외교사에 있어 전투 없이 얻은 승리로 기록되며, 고려의 국력과 지혜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2. 강동 6주의 확보, 전쟁 없는 영토 확장
강동 6주란 오늘날의 평양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귀주, 흥화진, 통주, 용주, 철주, 곽주의 여섯 지역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 압록강 남단의 전략적 방어선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희의 외교 담판은 이 강동 6주 지역을 고려의 실질적 영토로 확보하게 되는 결정적 성과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거란은 본래 강동 6주 지역을 자신들의 군사적 전초기지로 삼고자 하였으며, 고려가 그에 반대할 경우 군사적 압박을 통해 강제적으로 점령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서희는 외교 담판을 통해 고려가 오히려 국경 방어 및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거란을 설득하였습니다. 즉, 거란이 이 지역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송나라에 대한 방어선 확보하는 것이라면 고려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서희의 설득에 따라 거란은 군사를 철수하였고, 고려는 외교적 방식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토의 반환뿐만 아니라, 이후 고려의 국방 전략과 북방 외교의 방향성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한 사건이었습니다. 더욱이, 강동 6주의 편입은 이후 거란과의 2차, 3차 전쟁에서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전쟁 없이 영토를 확장한 사례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기 힘든 일이며 고려의 전략적 유연성과 서희의 외교적 기량이 만들어낸 귀중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서희의 외교 담판이 주는 교훈
서희의 외교 담판은 단순히 전쟁을 회피한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과 논리적 설득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는 무력보다는 지혜를,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 외교의 본질을 실천해 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국제 정세는 복잡하며, 군사력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상호 이익을 조화롭게 끌어내는 외교의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서희의 외교적 성과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표본이 될 수 있으며, 그가 보여준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태도는 현대 외교관들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서희의 외교 담판은 고려라는 국가가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고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순간이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외교의 뿌리로도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유산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공부를 넘어 미래 국가의 주권과 평화를 위한 필수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